작은 생각이 모여 나를 이루다
프로젝트 델타
5월호 주제
코로나가 바꾼 내 일상
* 데스크탑 기준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S.Jane @shui.jin_
코로나로 제일 달라진 점은, 아무래도 뚜벅이에서 운전러로 바뀐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면허는 16년도 백수 시절에 만들었으나 장롱면허였던 나를 끌어낸 것은 바로 코로나였다. 작년 이맘때 이직을 하면서 출퇴근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코로나가 신경 쓰이게 되었고, 차를 운전할 기회가 있으면 대중교통보다는 운전하다 보니 이제는 나름 익숙해졌다. 편도 160km로 대전까지 최장거리 운전도 해보고, 나 홀로 낯선 보성에서 카 셰어링을 통해 운전도 해보면서 나름대로 운전의 맛을 느끼고 있다. 며칠 전에는 언제나 같은 출근길이었지만, 흩날리는 벚꽃을 느끼며 운전도 해보았다. 코로나로 통제된 벚꽃길 옆을 달리며 짧게나마 벚꽃놀이도 하였다.
특히 `혼자` 운전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요즘같이 노래방을 가지 못하는 때에 나 홀로 코인 노래방이 되기도 하고, 노래도 크게 틀어 감상하는 청음실도 되기도 하고, 혼자만의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밖에 나와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운전하기 전까지는 대중교통도 나쁘지 않지! 했지만, 운전하게 되면 좀 더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버스로 30분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면 10분밖에 안 걸린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정말 운전이라는 건 끊을 수 없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드라이브스루로 맥모닝을 픽업하는 일조차 여전히 재미있으니 말이다.
물론 장롱면허를 넘어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집 앞 공원 유료주차장에서 700원 내고 주차 연습도 수없이 하고, 동네를 빙빙 돌면서 겨우겨우 차선 변경하는 건 재미도 없고, 쉬운 일도 아니었다. 새로 운전대를 잡고 일주일 만에 접촉사고도 나고 나름 다사다난한 일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배우는 것이 있어서 삶이란 게 재미있는 것 같다. 지금은 비록 13만 킬로를 달린 블랙박스 말고는 후방카메라도 없는 할아버지 아방이를 몰지만, 언젠가는 테슬라를 모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택시를 타면
학생이던 시절 택시를 타면 요금기에서 달리는 말발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짧은 거리여도 용돈에 비하면 턱없이 큰 지출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란 급할 때, 부모님과 이동하지 않을 때 이용하는 것이었고 혼자보단 여럿이서 탈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외근이 많은 직업을 선택한 이후 인생에서 탈 택시란 모두 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택시를 타고 서울과 경기를 넘나들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이면 두 시간 가까이 그 안에 갇혀있기도 했다. 이후 축적되는 야근과 과로로 에너지와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일을 볼 때도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얼마나 택시를 많이 탔던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리기 전 자동으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카드를 준비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택시를 많이 탄 만큼 좋은 기사님들도 만났지만 반대의 경우가 훨씬 잦았기에 내게는 일종의 원칙이 생겼다. 자리는 조수석을 선호하게 되었다. 앞좌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쭉 밀어 다리를 뻗을 공간을 확보하고 등받이를 확 젖힌다. 그래야 멀미도 덜하고, 험한 운전에도 덜 피곤하게 느껴졌다. 초반엔 기어코 뒤에 앉히려는 기사님들에 기세에 눌려 앞문을 열었다 닫는 일도 잦았는데 몇 년 지난 후부터는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요, 라고 칼같이 말하며 안전운전을 당부했다. 내비게이션대로 가 달라는 요청만 확인하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는다. 가능한 다른 말에는 시들하게 대답하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다른 어떤 대답도(피곤하다거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직접적인 답변을 포함한다) 놀라우리만큼 큰 동력을 삼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기사님들에게 이미 여러 번 호되게 당한 후였다.
위에 적어둔 태도를 정리하면 그다지 호의적인 손님이 되기 어려운데 안타깝지만 모두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원칙이다. 내 돈을 주고 이용하는 서비스에서 더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서비스를 구매하는 입장이어도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밀폐된 공간에서 때때로 나는 너무 쉽게 약자가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인 <타다> 도 한참 애용했다. 택시를 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덜 소모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좀 더 시간이 걸리고 금액이 비싸더라도 자연스레 손이 갔다. 출범 후 금세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타다>가 잡히지 않아 택시를 타면, 밑도 끝도 없이 택시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몹쓸 사업이라는 기사님들의 역정을 받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사납금을 떼 가는 택시회사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창문을 여는 것을 제지당하거나 내가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한참 들어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운전자의 사선 뒤쪽에 가능한 한 멀리 앉고, 공간은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으로 채워진다. 여전히 급정거와 급발진을 하는 택시기사를 만난다. 그럴 때면 전과 같이 창문을 조금 열고 멀리 내다보며 어서 택시에서 내리기만을 바란다. 부디 남은 시간 동안 손님으로서 최소한의 대접을 받기를 바라면서.
국제쌍화차
@bobi_eating_cake
2020년 8월 나는 15년 지기 친구와 대만여행을 가려 했다. 친구도 나도 해외여행 경험도 많이 없는데 휴가를 그냥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그해 여름에는 꼭 대만에 가려 했다. 우리의 계획은 타이베이에 있는 깔끔한 숙소에서 맛있는 버블티를 먹고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인형들을 잔뜩 사서 캐리어에 꾸겨 담아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여행계획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아주 잔잔한 여름을 보냈다. 극단적인 외향형 두 명은 이례적으로 방구석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엄청나게 답답하고 우울한 여름 휴가를 보낼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의외로 방구석 휴가를 완벽하게 보냈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한참 다이어리꾸미기에 빠진 나는 친구들과 스티커를 들고 모여 온갖 여름 스티커를 다이어리에 붙이며 뿌듯해 하며 꽤 멋진 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렇게 이례적인 여름 휴가를 보내고 생각할 시간이 아주아주 많아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다들 20살이 넘으면 최대한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고 한발 성장할 것이라고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던 언니들을 떠올리며 나도 세계 일주를 해야겠다고 버킷리스트에 당당하게 세계 일주 네 글자를 적어두곤 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여행하는 걸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정말 좋긴 했지만 늘 숙제를 해결하는 사람처럼 나는 매년 올해 휴가는 어디를 가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휴가 때 아무 데도 가지 않을 때는 왜인지 열심히 핑곗거리를 생각했다. 휴가를 알차게 보내지 않으면 왜인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한 방법으로 휴가를 보낸 2020년 여름, 나는 여행을 다녀온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모든 것이 막힌 상황에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밖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휴가는 굳이 알차게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휴가의 뜻이 '열심히 노세요'가 아니라 '일을 좀 쉬세요' 라는 것이니 어떻게 보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 누구도 나에게 '여행을 다녀와야지 휴가에요. 휴가 때 여행 안 다녀왔으니 반성문 쓰세요.' 라고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전혀 의무감으로 갈 것이 아니었다. 2020년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 것 같다. 인스타 피드에 올라온 친구의 여행사진을 보면서 '아 쟤네 열심히 사네 나도 열심히 여행 다녀야 되는데' 라는 생각과 '아 나 주말에 안 나가고 집에 있으면 게으른 사람으로 보겠지' 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그런 필요 없는 것들이 빠지고 나니 얼마나 가벼운지 모른다. 물론 이 상황이 답답하고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코로나바이러스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절망적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순간 우리 모두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손을 잘 씻자는 깨달음이라도 얻었겠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 어떠한 것을 느끼고 그것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Buttercup
@books-useyh94
가계지출증가
여자로 살면 생리대가 필수품이다.
한 달에 한 번 용도에 맞게 크기를 다양하게 맞추어 구매한다.
코로나 19 이후로 필수품이 하나 더 늘었다.
마스크, 용도에 따라 덴탈마스크를 살 것인지 KF94 또는 KF80을 살 것인지 새부리형을 살 것인지 색깔은 뭐로 할 것인지, 일회용을 살 것인지 다회용을 살 것인지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선택한다.
필수품이 하나 더 늘었다는 건 가계 지출비용이 늘었다는 뜻이다.
코로나 19로 임금은 동결인데 가계 고정지출은 늘었다.
코로나 19 후에 달라진 건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다는 거다. 그리고 마스크를 썼을 때의 얼굴과 벗었을 때의 낯섦을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 19 이전부터 알던 인연은 그래도 낫다. 마스크 시대에 만난 타인들은 벗었을 때 누구지? 할 수도 있으니 유의할 것!
통금시간 10시
동화 속 신데렐라는 코로나 19 시대보다 2시간이나 더 놀 수 있었다. 한창 유행하던 24시 영업점이 이제는 자취를 감춘 듯하다. 밤새 켜져 있던 반짝이는 불빛들은 깜깜한 밤이 되어 고요해졌다. 사람과의 만남도 최대한 자제하며 거리 두기를 한다. 지쳐가는 사람들은 조금씩 무뎌진 듯하다. 가끔 모임을 하기도 하는데 10시면 안녕!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에 위로를 전하며 제도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해결책으로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알러지안녕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상.
예전 같았으면 환절기 비염과 눈 알러지 등 각종 호흡기 질환을 정기적으로 겪어야 했다.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장시간 사용하니 신기하게도 비염을 비롯한 알러지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공기 중의 바이러스가 마스크를 통과하지 못함이 증명된 듯하다.
과거 페스트, 스페인 독감 등 수많은 전염병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했으며 목숨을 앗아갔다. 코로나 19 역시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요즘 시대의 전염병이다. 언제쯤 자유로워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생명의 초록을 느끼며 매일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가야겠다.
비록 고된 하루일지라도. Peace!
수박
@maehock82
우리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델타의 네 번째 호에 참여해주신 네 분의 작가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프로젝트 델타 5월호
글쓴이 S.Jane 국제쌍화차 Buttercup 수박
편집자 유빈
프로젝트 델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