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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주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몸

* 데스크탑 기준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187,168

어린 시절에는 내 몸에서 싫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눈, 코, 피부, 발, 등등... 하지만 이제는 뭐 어때하는 마음으로 그냥 살아가고 있다. 오늘 내 몸, 그중에서 내 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 키는 중학교 1학년 1학기까지는 언제나 중간치였으나, 여름방학 때 13cm가 커버렸다. 잘 때마다 성장통이 너무 심해서 깬 적도 많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170cm이 되어있었고 최종 키는 173cm. 중학교 2학년 개학일에 내 짝이 날 보고 누구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 키가 큰 것이 콤플렉스라서 움츠리고 다니다 보니 척추 측만과 거북목을 얻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차피 고치지도 못하는 거 왜 그러고 다녔나 싶다. 그때는 남자애들이랑 비슷하게 크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Tv에서도 키 큰 여자, 발 큰 여자는 웃음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모든 몸의 품평은 매체를 통해 시작되는 것 같다.

 

'라떼는,' 187,168이라는 음료수가 있었는데, 여자의 이상적인 키가 168cm이라는 것이었고, 모든 방송의 여자 연예인은 168cm에 48kg라는 천편일률적인 신체 사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인 미의 기준을 정상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매체. 요즘에도 수많은 미의 기준이 생기고 있지만, 이제는 다 커버린 우리가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기준이라는 것을 허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영상이나 그로 인해 파생된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부터 소소하게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S.Jane 

관절이 시린지 5년 정도 되었다. 관절이 시린 삶은 챙길 것이 많다. 목에는 사시사철 스카프를 두르고, 여름에도 항상 겉옷을 챙긴다. 멋을 부리고 싶어 7부 바지를 입을 때에도 양말을 챙겨 나간다. 지금도 손목에는 팥 찜질 팩을 두르고 있는데, 팥 찜질팩으로는 목, 손목, 발목부터 어깨, 허리, 무릎까지 지지지 못할 곳이 없다.

 

평생 써야 하는 관절이 20대부터 시리다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이라도 알면 좋겠는데 신경외과, 류마티스내과에서도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단다. 일을 시작하며 생긴 증상이니 일을 그만두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이제는 일을 그만두었는데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카드 값과 대출 상환액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관절 시림과 함께해야 한다.

 

관절 시림이 아주 유쾌한 경험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다. 토마토를 먹어서 어제보다 더 시린 것인지, 찬물로 샤워를 해서 손가락까지 번진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꽁꽁 싸매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오랜 기간 한약을 먹고, 8체질에 따른 식이요법을 하느라 술을 끊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이며 몸을 사리는 동안 나의 마음도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관절시림이 나에게 준 깨달음이 있다. 몸에 대한 깨달음 말이다.

 

깨달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관절시림이 시작되고 4년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새벽을 훌쩍 넘긴 시간에 5시간 넘게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손끝에 피가 쫙 도는 느낌을 받고나서야 그 동안 덜 움직여서 더 힘들어진거라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조금씩 몸을 쓰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다. 최근에는 5km 달리기를 해보았는데, 비록 페이스 메이커에게 끌려가다시피 달렸지만 끝까지 달리고나니 어마어마한 쾌감이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은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이제는 발가락이 시리면 걸으러 간다.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걷고 나면 손과 발이 따뜻해지고, 관절의 시림도 조금은 견딜만하다. 땀을 흘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우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쉬면, 대동맥을 통해 뱃속부터 발끝까지 퍼져나가는 따끈한 피의 감촉이 느껴진다. 편안하다. 스스로가 대견하다. 나는 나의 의지로 살아있다.

 

의료인으로 내가 몸 담근 의료계의 맹점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의료인의 입장으로 병원과 의료보건 시스템을 바라보았을 때 모든 질병은 이름이 있고, 검사 수치에 따라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내가 환자가 되고 나서야 진단받지 못하는 통증은 병원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들러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가 하려던 말을 온전하게 이해했다. 나는 벽에다 대고 말하고 있었구나. 병원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환자를 환자가 아니라고 배척하는 것. 논리적이고 타당한 듯했던 의료체계의 가장 큰 헛점이 거기에 있었다.

 

시림의 정도가 조금 나아지는 봄을 지나, 찬바람 쌩쌩부는 에어컨의 계절이 다가온다. 한 때는 왜 나만 통증으로 힘들까에 괴로워했지만 지금은 이만하니 다행이다, 라고 말한다. 계절에 따라 나의 몸에 미치는 외부적인 요소가 달라지니, 나는 그에 따라 내 몸을 보살피면 된다. 고장 날 것을 모르고 마구 헤프게 쓰는 것과 아껴서 쓰는 것의 차이는 크다. 나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남의 몸도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장 높이 점프하는 발레리노와 가장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발레리나에게 박수를 보냈다면, 지금은 학생들 옆에서 발가락 하나하나를 충분히 웜업과 쿨다운하여 자신의 몸에 시간을 주는 예순이 넘은 발레 선생님에게도 못지 않은 감동을 받는다. 앞으로 평생 쓸 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매일 내가 가진 몸에 더 감사하게 된다. 그러니, 관절시림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제쌍화차
@bobi_eating_cake

아프면 화난다

정확히 새벽 6시 15분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새로 산 에어쿨링 레깅스를 리뷰할 사진을 여러 번 찍으며 걷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슬림하게 나오게 하려고 여러 각도로 찍고 또 찍으며 걸었다.
아파트 후문 쪽 계단이 보이자 '집에 다 왔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우지끈 휘청거리면서 털썩 쓰러졌다. 

이번엔 꽤 심하게 넘어졌다.
새로 산 레깅스인데 구멍은 나지 않았는지 먼저 살폈다. 휴~다행이다.

오른발은 움직일 수 없었다.

널브러진 물병과 성경책을 들고 혼잣말로 나지막이 욕을 하며 고통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민달팽이처럼  느리고 또 느리게.
 

더 견디기 힘든 건 조금 뒤 출근해야 한다는 거다.
대체인력이 없어 쉴 수도 없다. 아..정말 울고 싶다.
도로가 함정처럼 움푹 파여있는데 차마 인지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지만 애당초 평평한 길이었다면 내 발목은 멀쩡했겠지!

왼쪽 무릎이 축축하다.
피가 난다. 집에는  그 흔한 밴드도 없다.


내 다리 내 놔~


공포이야기의 고전 '내 다리 내 놔'를 안다면 옛날 사람인가?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라면 모두가 알 법한 이야기 "내 다리 내 놔~"가 있다.

이젠 내용도 가물가물해진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지구의 중력을 견디며 두 발로 힘겹게 매일을 살고 있는데 그중 한 발만 사용할 수 있다니 얼마나 화가 나는지.

중력 말고도 아프니까 그냥 화난다. 만사 귀찮고 다 싫고 얼른 나으면 할 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이미 사치다.
여행을 통한 기분전환도,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도, 모두 다 이젠 내 것이 아닌 것.

내가 가장 갈망하는 자유조차 건강을 잃으니 다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아픈 사람이 왜 화가 나는지 알겠다.

아파서 화낸다.

마음이 아프든 몸이 아프든 이제 화내는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내 몸이 건강을 잃은 후에.
건강을 잃고 공감을 읽었다.

아프면 화난다.
모두 부디 건강하기를.

 

몸도 마음도. Peace.

​수박
@maehock82

나는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줄 알고 있었다. 실제로도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살이 출렁이는 것 같아 싫고, 땀이 나서 나한테 냄새가 나는 것도 싫고 아주 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 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다이어트 때문이다. 20살이 되고 살을 빼야지 결심하고 내가 찾은 곳은 동네 복싱체육관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복싱은 비록 뺀질이 회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체육관에 간 날보다 안 간 날이 더 많긴 하지만 어느덧 8년 정도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복싱을 하며 '아 내가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유연성은 없지만 지구력은 좋고 상체에 힘은 없지만 하체의 힘은 좋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운동을 잘하고 못한다는 판단 아래에 내 몸에 모든 기능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중고등학교 때도 운동을 못 하지 않았다. 골프공을 저 멀리멀리 날리고 에스보드를 타고 체육관을 활보하는 모습은 운동을 못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냥 나는 나의 뚱뚱한 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보통 날씬하지 않을까? 근데 나는 살이 많이 쪘네 그러니까 나는 운동을 못하는 거야라고 단정 지었다. 내가 나를 틀에 넣은 것이다.

운동을 하게 되고 시선에서 조금 자유로워 진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48키로가 될 때 까지 절대 못 갈거라 생각한 수영장에 스스로 등록하고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느끼게 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가끔 수영을 하는 꿈을 꾼다. 내가 고래처럼 파란 물속을 다니는 꿈 말이다. 코로나로 못간지 이년이 다된 수영장이지만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행복하다.

 

고등학교 때 체육 시험 문제에 ‘러너스하이’가 나왔었다. 그 때 설명을 보면서 어린 시절 나는 ‘달리기를 하는데 어떻게 몸이 가벼워지지? 말도 안돼.’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하다 참가하게 된 마라톤 대회에서 나는 그 기분을 느꼈다. 정말 힘들지만 어느새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맑은 날씨 속에 탁 트인 한강을 달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 기분은 정말 최고 였다. 그리고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은 정말 최고였다.

 

아직도 내 몸이 사회가 만들어낸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끄럽다. 아직도 옷을 입을 때 몸을 드러나면 신경쓰여서 아무것도 못하고 내가 뚱뚱하다는 것이 창피하다. 하지만 예전만큼 내 몸이 싫지는 않다. 이렇게 신나게 수영도 할 수 있고 달리기도 할 수 있는 건강한 내 몸이 꽤나 좋다. 앞으로도 건강 잘 유지해서 내 몸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아야지.

Buttercup

@books-useyh94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늘 탐이 나는 걸까? 우연히 길거리에서 키가 작고 마른 여자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상대적으로 키도 크고, 뼈도 굵고, 살집도 있는 내 모습을 보면 괜스레 민망해진다. 지금까지 열등감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부분 - 몸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타인과의 비교를 정말 많이 하고 있었다.

몸에 대한 열등감은 그동안 나를 꽤나 갉아 먹었다. 나는 전 남친들이 작고 마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보면 상당한 질투를 했었다. 하지 않아도 될 질투, 그리고 상처 주는 말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아픔을 주었다. 명절날, 가족에게 듣던 '튼튼해 보인다'는 말도 썩 기분 좋진 않았다. 통통한 내 몸을 '튼튼'이라는 단어로 포장했다고 느꼈다. 가족들은 별 의미 없이 내게 말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에 뼈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속상함에 울기도 했고 때로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시점은 외국에 살 기회가 생기면서부터다. 정확히는 나이, 체형에 상관없이 일하는 유럽의 스튜어디스, 아나운서, 기상 캐스터를 보면서부터. '그 나이대의 여자라면 이래야만 해'라고 생각해왔던,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단단한 고정관념의 경계가 그들 덕분에 깨졌다. 체형이 어떠하든, 안경을 쓰든 말든, 화장하든 말든, 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터에서 일할 권리를 당당히 얻고,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는 삶은 현대인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로 인해 내 마음이 기분 나빠질 권한을 주지는 말자. 누군가처럼 생기지 않았음을 이유로 우울해하고 속상해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게 불완벽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덜 허둥대보자.

유빈
@xluna_yux

우리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델타의 다섯 번째 호에 참여해주신 다섯 분의 작가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프로젝트 델타 6월호

글쓴이 S.Jane 국제쌍화차 수박 Buttercup 유빈

편집자 유빈

프로젝트 델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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