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7월호 주제

그대, 무얼하고 싶나요?

* 데스크탑 기준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꿈은 참 생소한 단어입니다.

 

제 기억으론 7살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꿈이 뭐냐는 질문에 호기롭게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것도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지만, 그땐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면 어른들 모두 박장대소하며 꿈이 크니 뭐라도 될 것 같다고 하셨으니까요. 사실 대통령 같은 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요.

 

조금 더 나이를 먹으니 꿈이라는 환영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젠 다른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꿈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였죠. 교단의 선생님도 되고 싶고 아주 유명한 작가도 되고 싶고 세계를 탐험하는 다큐멘터리 감독도 되고 싶고. 등등 많은 꿈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또 그만큼의 열성은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하지만 세상을 흐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길을 찾아 떠났어요. 혼자 남겨질 때의 불안함을 아는 사람은 이 의미를 알 거예요. 결국 그나마 잘하는 걸 골라서 업으로 삼았어요. 꿈꿨던 직업과 대충 맥락은 같으니 조금은 이뤘다고 할 수도 있는 걸까요?

 

대통령이라고 대답한 이후 20년도 더 지난 지금, 누구도 꿈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어릴 적 꿈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동화 속 유니콘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죠. 그 꿈을 이룬 사람은 아마 유니콘 다음 단계 정도 될 겁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요. 저도 언젠가 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거창한 미래를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의 눈은 반짝거렸지만 어차피 반은 만든 얘기라 내 눈은 흙빛이었어요. 7살 때 어른들 앞에서 내 꿈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것처럼요.

 

다 큰 지금, 대통령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지구촌을 돌아다니고 국민의 민생을 돌보는 한 국가의 원수처럼 사는 것도 아닌데 많은 게 참 고돼요. 내 삶 하나를 돌보는 것만 해도 벅차게 느껴지는 거예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건 덤이고요. 한 명의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데 내 세계는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인 거예요. 위태롭기만 한 세계라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던지요. 상황이 이쯤되니, 꿈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요.

 

그래도라는 시, 들어보셨죠?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구절이 참 와닿았는데요, 같은 맥락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는 말보다 '하루를 살아낸다'는 말이 더 와닿더라고요. 화창한 날, 당신은 새로 산 컨버스를 신고 미용실에서 갓 하고 나온 머리로 즐겁게 외출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나 싶더니 비가 내려서 컨버스 속은 이미 물바다고 청바짓단은 다 젖었어요. 주변에 편의점도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버려진 찢긴 우산을 씁니다. 곧 매미급의 태풍이 치고 비바람에 사람들이 날라다닙니다. 당신도 바람에 휩쓸리는데 찢긴 우산 덕분에 더 멀리 날아가버립니다. 이름 모를 섬에 정착하고 몸도 마음도 너덜거려요. 어쨌든 목숨은 붙어있기에 섬에 있는 열매를 찾고 집을 만들어요. 사람들도 하나 둘, 새로운 섬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협동해서 작은 마을 사회를 만듭니다. 당신은 1세대로 그 마을에 정착하고 새로운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것 봐요. 그래도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내잖아요.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합니다. 거창한 꿈만이 꿈이라고 믿었지만 변수는 너무 많고 유니콘은 실재하지 않다는 걸 알게된 지금, 꿈이라는 단어를 재정립하고 싶네요. 새로 나온 게임을 사거나, 연봉을 200만 원 인상하거나, 느낌이 좋은 사람과 친구하고 싶다거나. 이런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제 꿈은 매일을 잘 살아내는 것입니다. 물 한방울에 기어코 다 젖지 않는 의지도 같이요.

 

프로젝트 델타와 함께 당신의 어떤 꿈이라도 응원합니다.

​라라

​현관문이 닫히고 문으로 나간 이의 음성도 여운이 가실 때쯤,

나는 내 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뒤돌아 혼자 남은 방을 천천히 둘러본다. 온전한 내 공간.

집이 아닌 방이지만 나의 공간.

나는 내가 획득한 고요에 몸서리치며 털썩 바닥에 앉아본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노래를 틀어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내가 꿈을 이룬 모습은 집에서 독립하여 내 공간에 혼자 남는 순간이다.

소박하지만 값싸지는 않은 꿈.

어느 순간부터 월급이 입금된 것을 확인할 때나 무언가를 사 먹을 때, 사모을 때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당장 내가 가진 돈과 가능한 어떤 소비도 만족스럽지 않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현재는 어찌어찌 보내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잦아들지 않는다.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하다.

서울의 집값은 비현실적이고, 내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매일 서울 안을 오가며 나는 과연 이 도시 안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선택한 생활이 가능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지금의 내 꿈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원하지 않아도 홀로 생활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많고,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독립은 내가 꿈꾸지 않아도 언젠가는 겪게 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 당장은 안되지만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이든, 시점이 어느 때가 되든 결국은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그리고 그 이후가 정말이지 궁금하다.

꿈을 달성해 그 꿈을 잃은 나는 또 어떤 꿈으로 살아가게 될까.

 

고양이를 모셔오는 것일 수도, 새로운 학위를 따는 것일 수도 있고,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좋은 오디오를 사는 것일 수도
어쩌면 집을 더 넓은 곳으로 옮기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다시 나의 공간을 박차고 나가 세상과 더 긴밀히 만나거나, 당신을 내 공간에 초대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든 나는 또 새로운 꿈을 원동력으로 살아갈 것이고.

 

내가 튼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기 시작할까.

걱정과 기대가 되는 나의, 우리의 미래는 도래하고 있다.

 

지금은 그저 당신도 나도, 미래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꿈꾸고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dangdo

내 꿈은 돌멩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민들레 꽃가루가 날리면 바라보고.

가끔 누군가의 발에 치여 데굴데굴 이동하는 돌멩이.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뜻이다.

감정노동과 더불은 육체노동에 끝이 보이지 않는 네버엔딩 야근.

집에 오면 육아로 퇴근없는 매일을 살고 있는 나에게 꿈이 무어라 묻는다면 그냥 돌멩이다.

조금의 사치를 더하자면 음악이 늘 흘러 나왔으면 좋겠다. 선곡은 재즈.

사계절을 오롯이 느끼며 코로나19로 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고 그냥 뒹굴뒹굴 굴러 다니거나 한 곳에 머물러 있어도 좋겠다.

납작하고 동글동글하다면 솜씨 좋은 누군가가 물수제비를 뜰 수도 있겠지.

강바닥 아래로 가라 앉아 있다가

운이 좋다면 또 다시 밖으로 나와 햇볕도 쬐다가 바람도 쐬는 맨들맨들 돌멩이로 있겠지.

참으로 평화로운 오후의 시간을 보내며.

어쩌면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전투력 강한 돌멩이일 수도 있고,

이름 모르는 산호섬의 반짝이는 작고 예쁜 돌멩이일 수도 있고,

그냥 딱딱한 돌멩이인 줄 알았는데 다이아몬드일 수도 있고. 와우!

내 꿈은 돌멩이다. 아무것도 안하는 돌멩이.

그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수박
@maehock82

나는 큰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곧게 뻗어 그 누구보다 높이 자라 가장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 싶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당연히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만약 조금이라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바로 포기해버리고 회피했던 것 같다. 요즘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무언가를 미루는 것은 내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박사님의 말에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로 있겠다.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라는 존재는 실패가 축적되고 축적되어 된 존재가 아닌가? 태어나서 내가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졌으며 내 이름자를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끼적이기를 했을 텐데 그 실패라는 것이 쌓이는 것이 두려워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 계속 비장하게 살아온 것 같다. 어깨에 힘이 가득 들어간 채 하는 일은 잘 될 리가 없었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내더라도 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내가 모래성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모래성 가운데 막대를 꽂아 넣고 모래를 한 움큼씩 가져가는 게임.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그 모래를 가져가듯 한 움큼씩 쥐어 버렸다. 그럴수록 한가운데 꽂혀 있는 나는 아슬아슬 겨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넘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내가 버린 모래들을 버려서는 안 됐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의 안 좋은 부분도 좋은 부분도 모두 나를 지탱하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버렸다.

우연히 본 대화의 희열에서 오은영박사님은 육아를 너무 비장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비유가 옳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나 자신을 키워가는 중이는 우리도 삶을 비장하게 살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금 힘을 빼고 하루하루를 결과를 맺고 완벽하게 살기보다 그냥 바람이 부는 듯이 살고 싶다. 바람은 어떤 목적을 갖고 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바람결에 씨앗이 날려 결실을 맺기도 하듯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나의 삶의 태도를 조금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나무와 같이 살지 않기를 바란다. 모진 바람에 견디고 견디다 견딜 수 없으면 부러져 버리는 대나무가 아닌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갈대가 되길 바란다. 바람이 불면 갈대밭에서 갈대들이 흔들리며 소리가 나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곁에서 슬픈 일이 있으면 울음소리도 내고 기쁜 일이 있으면 웃음소리도 내고 나와 함께 큰 금빛 들판을 이루어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갈대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줏대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결국 갈대의 뿌리는 한 곳에 내리고 있다는 것을 결국 나라는 정체성은 한순간 바람에 흔들린다고 바뀌지 않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Buttercup
@books_useyh94

퇴사후의 삶?

회사를 다니다 보면, 연장자인 사람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임원들이랑 말할 때는 나의 목표는 무조건 사장이어야 하지만... 이 회사의 사장이라곤 안 했다. 다들 나이 들면 자기 사업을 해야지! 하는데 어릴 적부터 꿈이 그냥 회사원이었던 나에게는 아직 구체적인 꿈이란 건 없는 것 같다. 그냥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차릴까 했지만...

 

요즘 들어 인스타에 그림이나 끄적일까 생각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건 일상툰, 회사툰, 데일리룩, 등등인데 막상 드로잉도 안 하고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있다. 다들 코인이다 유튜브다 하면서 회사 그만두고 자기 자신의 브랜딩을 하라고 난리 난리인 이 세상에서, 휩쓸려서 이리저리 부닥치는 것보다, 잘 정비해서 깔끔하게 짠 나타나는 것이 내 목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글과는 다르게 중국어 hsk6급 공부를 하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미래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영문이나 중문 번역을 해서 외국인 대상으로 업로드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 파이팅.

​신수진

우리의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델타의 마지막호에 참여해주신 다섯 분의 작가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프로젝트 델타 7월호

글쓴이 라라 dangdo 수박 Buttercup 신수진

편집자 유빈

bottom of page